제가 지금 살고 있고 공부를 하고 있는 이 곳 München. 여러 이야기들 중에서 München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Leo von Klenze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Leo von Klenze (1784-1864)
Leo von Klenze(1784-1864, 이하 클렌체)는 Karl Friedrich Schinkel(1781-1841, 이하 쉰켈)과 더불어 신고전주의 시대 때의 대표적인 독일 건축가입니다. 쉰켈이 자신의 설계에 질문을 하고 해답을 찾으며 다양한 구조적인 방법을 고민했던 것에 반해 클렌체는 거의 60년 작업 동안 사회변혁의 시대 속 에서도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건축적 기본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이러한 작업 안에서의 통일성은 그의 건물들과 더불어 뮌헨이 명확한 인상을 가지도록 가능케 했는데요. 쉰켈의 건물이 없는 베를린을 생각하기 어렵듯이 바이에른의 궁정 건축가였던 클렌체의 건물이 없는 뮌헨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Königsplatz, Glyptothek, Pinakothek 등과 같이 그에 의해 계획되었던 광장들과 건물들은 지금까지도 뮌헨의 모습(Stadtbild)을 대표합니다.
클렌체는 1800년 베를린에서 건축공부를 시작했고 이 시기에 Friedrich Gilly(1772-1800)의 작업에 매료되었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그랬듯이 그 역시 고전건축에 매달렸고 팔라디오가 로마식 건축을 자신의 시대로 가지고 와 정제해 내어 풀어낸 것처럼 그리스식 건축을 자신의 시대의 자신만의 언어로 담아내고 싶어했습니다. 1803년 학업이 끝난 후 클렌체는 파리로 가게 되는데요. 거기서 Ecole Polytechnique의 Jean-Nicolas-Louis Durand(1760-1834)을 만나게 됩니다. 그에게로부터 많은 건축적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후에 그의 대표적인 작업들을 통해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카셀에서 나폴레옹의 형제인 제롬의 추천으로 첫 번째 일(Theater Napoleonshöhe)에 착수하지만 1813년 나폴레옹의 실각으로 그도 실업자가 됩니다. 새로운 일을 찾기 위해 빈으로 여행 중 중간정착지인 뮌헨에서 후에 그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는 태자 루드비히 1세(Kronprinz Ludwig 1.)와 만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고 1805년 파리에서 다시 만난 루드비히 1세는 그에게 Glyptothek 설계 경쟁에 Karl von Fischer(1782-1820), Karl Haller von Hallerstein과 함께 참여할 것을 권유합니다. 여기서 클렌체는 1등을 하고 그의 작업을 뮌헨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후에 바이에른의 궁정 건축가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는데요. 당연한 얘기지만 예나 지금이나 역시 건축가는 좋은 건축주를 만나야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나 봅니다. 1864년 눈을 감기 전까지 그는 이 곳 뮌헨에서 수 많은 가치있는 작업들을 남기게 됩니다.
그럼 간단하게 클렌체의 작업들을 구경해보죠.
클렌체는 1800년 베를린에서 건축공부를 시작했고 이 시기에 Friedrich Gilly(1772-1800)의 작업에 매료되었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그랬듯이 그 역시 고전건축에 매달렸고 팔라디오가 로마식 건축을 자신의 시대로 가지고 와 정제해 내어 풀어낸 것처럼 그리스식 건축을 자신의 시대의 자신만의 언어로 담아내고 싶어했습니다. 1803년 학업이 끝난 후 클렌체는 파리로 가게 되는데요. 거기서 Ecole Polytechnique의 Jean-Nicolas-Louis Durand(1760-1834)을 만나게 됩니다. 그에게로부터 많은 건축적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후에 그의 대표적인 작업들을 통해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카셀에서 나폴레옹의 형제인 제롬의 추천으로 첫 번째 일(Theater Napoleonshöhe)에 착수하지만 1813년 나폴레옹의 실각으로 그도 실업자가 됩니다. 새로운 일을 찾기 위해 빈으로 여행 중 중간정착지인 뮌헨에서 후에 그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는 태자 루드비히 1세(Kronprinz Ludwig 1.)와 만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고 1805년 파리에서 다시 만난 루드비히 1세는 그에게 Glyptothek 설계 경쟁에 Karl von Fischer(1782-1820), Karl Haller von Hallerstein과 함께 참여할 것을 권유합니다. 여기서 클렌체는 1등을 하고 그의 작업을 뮌헨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후에 바이에른의 궁정 건축가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는데요. 당연한 얘기지만 예나 지금이나 역시 건축가는 좋은 건축주를 만나야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나 봅니다. 1864년 눈을 감기 전까지 그는 이 곳 뮌헨에서 수 많은 가치있는 작업들을 남기게 됩니다.
그럼 간단하게 클렌체의 작업들을 구경해보죠.
Koenigsplatz. München. 1925년 경 사진.
여기가 바로 쾨닉스플라츠인데요. 왼쪽에 보이는 중정이 있는 정방형건물이 글립토텍 되겠습니다. 사실 이 광장은 처음에 뮌헨의 또 다른 대표적인 건축가 칼 폰 피셔에 의해 계획되었습니다. 아테네의 아크로 폴리스로부터 공간개념을 따왔는데요. 클렌체가 글립토텍의 일을 따오면서 종합적인 광장 계획도 따라 넘어오게 되었답니다. 쾨닉스플라츠는 뮌헨에 있는 광장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광장인데요. 역사적으로나 건축적으로나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서 다음에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Glyptothek 뒤쪽 입면. München.
Ruhmeshalle. München.
글립토텍은 현재 그리스, 로마식 조각들을 모아 놓은 안틱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알테 피나코텍은 중세부터 18세기 중반까지의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건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고전적인 느낌이 풍기면서도 각 구성요소는 장식이 최소화 되어 평면적이면서 육중한 모습으로 읽혀집니다. 간단하게 몇 개의 이미지로 클렌체의 작업을 보여드렸는데요. 서두에 밝혔듯이 클렌체는 에콜 폴리테크의 뒤랑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다음 번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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